Skip to main content
VitalKorea

착공률 0%를 향하여: 안전의 이름으로 경제를 멈추다

대한민국은 산재사고율 0%를 위해 착공률 0%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처벌 중심의 규제가 가져온 건설 현장의 마비와 공급 절벽, 그리고 이것이 초래할 경제적 파장을 진단합니다.

공유하기
게시일 · 13분 소요
Illustration of a driver pushing a car instead of driving, symbolizing risk avoidance behavior in the construction industry
Image: 실제 사진이 아닌 설명을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운전이 무서우면 내려서 밀면 된다

어느 날부터 도로에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운전자들이 차에서 내려 직접 차를 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면 처벌받기 때문입니다. 핸들을 잡고 있으면 언제든 사고의 책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밀고 가면 어떨까요. 운전을 하지 않으니 운전 중 사고도 없습니다. 교통사고 처벌도 피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해법 아닙니까?

물론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차는 운전해야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내려서 밀면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합니다. 뒤따라오던 차들도 함께 멈춰야 합니다. 도로는 마비되고 모두가 손해를 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건설산업에서 정확히 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산재사고율 0%를 달성하기 위해 착공률 0%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착공을 하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습니다. 구속될 수도 있고, 수십억 원의 과징금을 물 수도 있고, 영업정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착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사를 하지 않으면 공사 중 사고도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도 없습니다. 산재사고율 0%, 목표 달성입니다.

운전이 무서워 차에서 내려 미는 운전자처럼, 건설업계는 처벌이 무서워 삽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이것을 안전 정책의 성과라고 부릅니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 상황입니까?

멈춰선 현장, 무너지는 수치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2023년 전국 건축착공면적은 전년 대비 31.7% 감소했습니다. 수도권은 34.2%, 지방은 29.5% 각각 급감했습니다. 7,567만 8,000제곱미터. 2021년의 1억 3,566만 8,000제곱미터와 비교하면 2년 만에 44%가 증발한 셈입니다. 이 수치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2025년 11월 발표한 건설동향브리핑 제1030호는 더욱 암울한 현실을 전합니다. 2025년 1월부터 8월까지 누적 건축착공면적은 전년 동기 대비 16.0% 추가 감소했습니다. 이미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지하에서 더 깊은 지하로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설기성, 즉 실제 공사가 이루어진 금액은 같은 기간 18.5% 급감했습니다. 월간 건설기성 침체는 2024년 5월부터 시작되어 역대 최장기간인 16개월 연속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장이 멈췄다는 뜻입니다.

건설투자는 어떨까요? 지표누리 e-나라지표의 건설투자동향에 따르면 건설투자는 2023년 1.3% 반등한 이후 2024년 다시 하락세로 전환됐습니다. 한국은행은 2024년 건설투자 증감률을 당초 -1.8%에서 -2.6%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5년 건설투자가 전년 대비 8.8%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분기별로 보면 2025년 1분기 -13.3%, 2분기 -11.4%, 3분기 -8.2%를 기록했습니다.

허가부터 착공, 투자까지 건설산업의 모든 선행지표와 동행지표가 동시다발적으로 붉은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설산업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연속 내림세라는 전례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닙니다. 산업의 붕괴입니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가장 약한 고리의 파열

건설현장이 멈추면 가장 먼저 타격받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일용직 근로자들입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건설업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3만 2,000명 감소했습니다. 이는 16개월 연속 감소세입니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10월 고용동향 분석에서는 감소 폭이 12만 3,000명으로 여전히 두 자릿수 감소가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통계는 더욱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줍니다. 건설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53.1세에 이르렀습니다. 40대 이상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고, 35세 미만 청년층은 0.5%에 불과합니다. 60대 이상 비중은 29%를 넘어섰습니다.

건설업은 청년이 기피하고 고령층이 버티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은퇴를 미루고 현장에 나와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60대 가장들이, 현장이 멈추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착공이 줄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들에게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일자리가 있습니까?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주거용 착공은 전년 동기 대비 56.8% 감소했습니다. 주거용 건설은 고용 유발 효과가 가장 큰 분야입니다. 착공이 반 토막 나면 일자리도 반 토막 납니다. 이것은 산술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외칠 때, 규제는 일자리를 삭제하고 있었습니다.

운전하면 처벌받는 시대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습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먼저 적용됐고, 2024년 1월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습니다. 법의 취지는 명확했습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 의무를 부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 법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 9월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보면, 반복적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3년 내 영업정지를 2회 받으면 건설업 등록이 말소될 수 있습니다. 공공입찰 참여도 제한됩니다.

처벌의 칼날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조달청은 중대재해 발생 업체의 공공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으며, 사고사망 만인율 감점 기준을 50억 원 미만 공사에도 확대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건설사 입장에서 공사를 하면 리스크가 생기고, 공사를 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없습니다. 합리적 선택은 무엇일까요?

“가장 확실한 안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CEO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이를 “고강도 안전 및 노동 규제 강화가 공사 지연과 비용 상승을 초래하여 수주 회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1.2%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경영상 부담이 커졌다고 응답했습니다. 74.6%는 안전관리 비용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안전에 투자할 돈은 주지 않으면서, 사고가 나면 회사를 문 닫게 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기업이 적극적으로 착공에 나설 유인이 있을까요?

사고가 줄었다는 착각

규제 강화론자들은 말합니다. 처벌이 강해졌으니 사망이 줄었다고. 정말 그럴까요?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는 589명으로 전년 대비 감소해 사상 처음으로 500명대에 진입했습니다. 건설업 사망자도 2022년 402명에서 2023년 356명, 2024년 328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e-나라지표 산업재해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나타납니다. 2025년 9월 말 현재 업무상사고 사망만인율은 0.30으로 전년 동기 대비 0.02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사고사망자 수는 67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명, 9.4% 증가했습니다. 전체 사망자 수도 1,73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8명, 10.7% 증가했습니다.

2024년 감소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고용노동부 자체 분석에서도 건설경기 위축에 따른 공사 물량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안전해진 것이 아니라, 일을 덜 해서 사고가 덜 난 것입니다. 차에서 내려 밀고 가니까 교통사고가 안 난 것입니다. 이것을 정책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국제 비교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OECD 국가의 건설업 산재 사망사고 실태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전체 산업 근로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는 3.61로 OECD 35개 회원국 평균 2.43의 1.5배였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건설업입니다. 건설업만 따지면 한국은 25.45로 OECD 평균 8.29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처벌이 약해서일까요? 형량만 따지면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문제는 시스템입니다.

처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영국의 교훈

안전은 중요합니다. 노동자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접근 방식입니다.

현재의 규제는 사후 처벌(Ex-post Punishment)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경영책임자를 구속하고,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두 가지 근본적 한계를 가집니다.

첫째, 처벌의 공포는 사업을 위축시킵니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둘째, 처벌은 사고를 예방하지 못합니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1건의 중대 재해 뒤에는 29건의 경미한 재해, 300건의 아차 사고가 있습니다. 사고는 현장의 불완전한 시스템, 촉박한 공기, 부족한 예산 등 구조적 문제의 결과입니다. 경영책임자 한 명을 구속한다고 해서 그 구조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영국의 사례를 봅시다. 영국은 1994년 CDM(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 규정을 도입했습니다. 이 규정의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설계(Design)입니다.

건물을 시공할 때 사고가 나는 원인의 상당수는 설계 단계에서 결정됩니다. 영국은 발주자와 설계자에게도 안전 책임을 부과합니다. 안전조정자(Principal Designer)라는 전문가가 기획 및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여, “이 설계대로 시공하면 작업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설계를 수정하게 합니다. 위험 요소를 현장이 아닌, 도면에서 미리 제거하는 것입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해외 제도 비교 연구에 따르면, 영국은 CDM 도입 이후 건설업 사망 사고가 획기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처벌을 강화해서가 아니라 프로세스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위험을 없애는 ‘사전 예방(Ex-ante Prevention)‘이 사고가 난 후에 책임자를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백 배 효과적입니다.

밀어서는 목적지에 갈 수 없다: 공급 절벽의 공포

착공 감소는 단순히 건설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곧 닥쳐올 공급 절벽을 의미합니다. 아파트는 짓는 데 2~3년이 걸립니다. 지금 착공하지 않으면 3년 뒤에는 입주할 아파트가 없습니다.

착공 감소는 공급 감소를 의미합니다. 공급 감소는 가격 폭등을 의미합니다. 주택산업연구원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2026년 주택시장 전망을 종합하면, 전국 주택 전세가격은 4.0% 상승, 매매가격은 강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세난이 다시 시작된다는 신호입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이후 누적된 미착공 물량은 41만 7,000호에 달합니다. 지어지지 않은 집이 40만 채가 넘는다는 뜻입니다. 지표누리의 건축허가·착공·준공 현황에 따르면 건축허가면적도 2023년 전년 대비 25.6% 감소했습니다. 허가는 착공의 선행지표입니다. 현재의 허가·착공 급감은 2~3년 후 더 심각한, 재앙 수준의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차에서 내려 밀면 사고는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에는 영원히 도착하지 못합니다. 건설업이 멈추면 사고는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은 지어지지 않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폭증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한 결과입니까?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문제를 진단했다면 해법도 제시해야 합니다. 비난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1. 설계 단계 안전 통합 (K-CDM): 언제까지 시공사만 쥐어짤 것입니까? 영국 CDM 규정처럼 발주자와 설계자에게도 권한과 책임을 주고, 설계 단계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도면에서 위험을 지워야 현장에서 사고가 사라집니다.
  2. 안전 비용의 현실화: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안전에도 비용이 듭니다. 최저가 입찰로 공사비를 깎으면서 최고의 안전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공공 발주에서부터 안전 비용을 별도로 산정하고 실비로 정산하는 체계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3. 규제의 질적 전환: ‘얼마나 처벌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합리화하고, 예방 노력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합니다.
  4. 스마트 건설 기술 도입: 위험한 고공 작업은 로봇이, 복잡한 관리는 AI와 디지털 트윈이 하도록 기술 투자를 지원해야 합니다. 사람이 위험한 곳에 가지 않게 하는 기술, 그것이 진정한 안전입니다.

운전이 무서워 차에서 내려 미는 것은 해법이 아닙니다.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안전한 도로를 만드는 것이 해법입니다. 착공이 무서워 삽을 내려놓는 것은 해법이 아닙니다. 안전하게 짓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해법입니다.

대한민국은 산재사고율 0%를 위해 착공률 0%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무모한 도전은 성공해서는 안 됩니다. 착공률 0%를 향한 질주는 당장 멈춰야 합니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엔진을 켜야 할 때입니다.


참고 자료

Share this insight
박성훈

박성훈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의 접점에서 기업과 가계가 직면한 리스크를 분석합니다. 냉철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위기 속의 기회를 찾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작성자의 모든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