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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 사태'로 본 연예인 매니저들의 노동 실태: "우리는 5분 대기조 노예였다"

안주 심부름이 업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 매니저들의 눈물. 톱스타 박나래 소송전으로 드러난 '가족 같은' 갑질과 기형적 고용 구조 심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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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8분 소요
서울 강남의 네온사인이 보이는 밴 안에서 지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매니저의 모습
Image: 실제 사진이 아닌 설명을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안주 심부름이 업무인가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 매니저들의 눈물

톱스타 박나래와 전 매니저들의 1억 원대 소송전. 대중은 “연봉 1억 주는데 그 정도도 못하냐”와 “현대판 노비다”로 갈려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현직 매니저 5인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드러난 것은 단순한 갑질을 넘어선 기형적인 고용 구조였습니다.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 붕괴: “저는 하녀였습니다”

폭로된 내용 중 핵심은 ‘24시간 5분 대기조’입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뒷정리, 가족 행사의 짐꾼 노릇, 한밤중 안주 배달. 이것이 근로계약서상 ‘아티스트 케어’라는 모호한 단어 한 줄로 정당화되고 있었습니다.

“매니저는 운전기사이자 비서, 때로는 하녀이자 감정 쓰레기통입니다. 퇴근 후에도 카톡이 울리면 심장이 내려앉는 공포를 느낍니다.”

인터뷰이 B씨(7년 차 로드매니저)는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가족이라면서요”: 가스라이팅의 굴레 연예 기획사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은 “우리는 가족”입니다. 이 말은 법적 보호를 무력화하는 마법의 단어입니다. “가족끼리 야근 수당을 따지냐”, “형이 잘되면 너도 좋은 거 아니냐”는 논리로 무급 노동을 강요합니다. C씨(전직 아이돌 매니저)는 “가족이라더니, 아프니까 짐짝처럼 버리더라”며 씁쓸해했습니다.

박나래 측이 주장한 “연봉 1억 지급”은 사실일까? 확인 결과, 이는 기본급이 아닌 차량 유류비, 활동 진행비, 식대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다수 매니저는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기본급(약 200만 원)을 받으며, 아티스트가 행사를 많이 뛰어야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입니다. 즉, “아티스트의 기분을 맞춰야 내 월급이 나온다”는 종속 관계가 갑질을 견디게 만드는 족쇄였습니다.

매니저는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되기도 모호하고, 일반 근로자로 보기엔 근로 시간이 불규칙합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대기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하지만, 연예계 현장에서는 “차에서 자는 건 쉬는 거 아니냐”며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촬영이 지연되어 20시간을 대기해도 수당은 ‘0원’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반복되는 매니저들의 폭로, 왜 바뀌지 않나?

과거 이순재, 신현준 등 톱스타들의 매니저 갑질 논란이 터질 때마다 자정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장은 요지부동입니다. 왜 그럴까요?

폐쇄적인 업계 카르텔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평판이 전부인 좁은 바닥입니다. “누구네 매니저가 내부 고발했다더라”는 소문이 돌면, 해당 매니저는 업계에서 매장당합니다. 재취업이 막힐까 두려워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팬덤의 맹목적인 옹호

사건이 터지면 팬덤은 조직적으로 아티스트를 옹호하고 피해자인 매니저를 공격합니다. “오빠가 그럴 리 없다”, “돈 뜯어내려는 수작이다”라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습니다. 이러한 팬덤 권력은 기획사가 매니저를 소모품 취급해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줍니다.

  1. 매니저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대중은 매니저를 ‘연예인의 가방모찌(가방 들어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존중이 부족합니다. “연예인 보려고 하는 일 아니냐”는 편견은 매니저들의 노동 가치를 깎아내립니다.
  2. 제도적 감시의 부재: 고용노동부의 근로 감독은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특수 고용 형태가 많아 감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왔습니다. 2022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패션 스타일리스트 업체 10곳 중 7곳에서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해 연예기획사 2곳에 대한 근로감독에서는 12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이 적발되었으며, 여기에는 1,600만 원 상당의 연장근로수당 미지급과 근로시간 위반이 포함되었습니다. 연예 기획사에 대한 특별 근로 감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과거에는 기획사의 힘이 셌지만, 지금은 톱스타 1인이 기획사를 먹여 살리는 구조입니다. 기획사 대표조차 톱스타의 눈치를 보느라 매니저의 고충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박나래가 싫어하면 바꿔야지 어쩌겠어”라는 식입니다.

해외 사례는 어떠한가: 할리우드의 에이전트 시스템

미국 할리우드의 시스템은 우리와 다릅니다. 철저한 계약 관계와 역할 분담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퍼스널 어시스턴트(PA)와 에이전트의 구분

미국에서는 스케줄 관리와 계약을 담당하는 ‘에이전트(Agent)‘와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는 ‘퍼스널 어시스턴트(PA)‘가 명확히 구분됩니다. PA는 아티스트가 사비로 고용하며, 업무 범위가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됩니다. 한국처럼 매니저가 공적 업무와 사적 심부름을 모두 떠안는 구조는 드뭅니다.

강력한 노조의 보호 미국은 작가 조합, 배우 조합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에이전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가 강력합니다.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 지급은 물론, 휴식 시간 보장이 엄격하게 지켜집니다. 이를 어길 시 제작사가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됩니다.

할리우드 에이전트는 변호사나 회계사 못지않은 전문직으로 대우받습니다. 그들은 아티스트의 커리어를 기획하고 협상하는 전략가입니다. 운전이나 빨래를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국 매니지먼트 산업도 이러한 전문화의 길로 가야 합니다.

일본의 월급제 시스템 일본의 경우, 많은 연예인이 기획사에 소속된 월급쟁이 형태입니다. 매니저 또한 일반 회사원과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비교적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일합니다. 물론 일본 특유의 도제식 문화가 있지만, 한국처럼 극단적인 갑질이 빈번하지는 않다는 평가입니다.

심리적 고통과 감정 노동: “나는 사람도 아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적 모멸감입니다. 매니저들은 아티스트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강요받습니다.

언어폭력과 인격 모독

“야”, “너”,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같은 폭언은 예사입니다. 운전 중에 뒤통수를 때리거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매니저들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기도 합니다.

사생활 침해와 감시

“지금 어디냐”, “뭐 하냐”는 연락이 밤낮없이 이어집니다. 휴가 중에도 업무 연락을 받아야 하고, 연애 사실을 보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완전히 아티스트에게 종속된 상태입니다.

로드 매니저의 수명은 짧습니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현장에서 버티기 힘듭니다. 실장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업계를 떠나야 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없어 재취업도 막막합니다. 이러한 불안감이 현재의 부당함을 참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제언: 매니저는 ‘노예’가 아니라 ‘파트너’다

이번 사태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요하며 노동법을 무시해온 엔터 업계의 관행이 터진 것입니다.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표준업무가이드라인 제정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가 협력하여 ‘연예 매니저 표준업무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합니다. 어디까지가 업무이고 어디까지가 사적 심부름인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업무 시간 외 사적인 연락 금지”, “가사 노동 요구 금지” 등을 명문화해야 합니다.

매니저 협회의 역할 강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가 단순한 친목 도모나 기획사 이익 대변을 넘어, 현장 매니저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조 성격의 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부당 대우 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법률 상담을 지원해야 합니다.

대중들도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가려진 스태프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갑질 논란이 있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윤리적인 경영을 하는 기획사를 응원하는 ‘착한 소비’가 필요합니다.

2026년의 엔터테인먼트

제2의 박나래 사태는 언제든 다시 터질 시한폭탄입니다. 누군가의 눈물을 먹고 자란 꽃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K-컬처가 진정한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기 위해서는, 그 화려한 무대 뒤편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매니저가 웃어야 스타도 웃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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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이서윤

K-콘텐츠와 연예계 이슈, 청년 문화와 사회 트렌드를 다룹니다. 대중문화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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