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공룡 쿠팡, 다시 도마 위에 오르다
대한민국 유통 시장을 장악하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쿠팡이 2025년 연말, 다시금 거센 비판의 파도에 직면했습니다.
지난해 이른바 ‘취업 제한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쿠팡이, 이번에는 영세 사업자에 대한 갑질과 노동 인권 침해 문제로 전방위적인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노동조합 차원의 반발을 넘어, 출판계와 종교계 등 시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그 파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배송’의 기적 뒤에는 납품 업체들의 피눈물과 노동자들의 과로가 깔려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독점 규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출판계의 반란: “쿠팡의 최저가, 문화 다양성 죽인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것은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주요 출판사들의 집단 반발이었습니다.
출판계는 쿠팡이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최저가 보장’을 강요하며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이를 거부할 경우 검색 노출에서 배제하거나 ‘로켓배송’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등 보복성 갑질을 일삼았다고 폭로했습니다.
한 중소 출판사 대표는 “쿠팡의 요구대로 단가를 맞추려면 적자를 보고 책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거부하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쿠팡 판로가 막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는 거대 플랫폼이 유통망을 장악한 뒤 공급자를 착취하는 전형적인 ‘플랫폼 갑질’ 사례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종교계의 가세: “성전(聖典)마저 돈벌이 수단인가”
여기에 종교계까지 비판 대열에 가세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습니다. 기독교와 불교 등 주요 종교 단체들은 쿠팡이 성경이나 불교 서적, 종교 용품 유통 과정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떼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종교계 관계자들은 “쿠팡이 성스러운 경전마저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며 분개했습니다. 특히 일부 종교 서적의 경우, 쿠팡이 자체브랜드(PB) 상품처럼 유사 서적을 만들어 상단에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원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습니다. 종교계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쿠팡 불매 운동’까지 시사하고 있어, 쿠팡 측으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배송 노동자들의 절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쿠팡맨’으로 불리는 배송 노동자(쿠팡친구)들과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입니다. 살인적인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심야 배송과 휴일 근무가 강요되고, 이로 인한 과로사와 근골격계 질환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쿠팡이 산재 승인율을 낮추기 위해 사고 발생 시 조직적으로 은폐하거나, 산재 신청을 하는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공개된 내부 문건에서는 회사가 산재 신청을 ‘리스크’로 규정하고 관리해 온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사람 갈아 넣어 만든 로켓배송”이라며 인간다운 노동 조건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산재·노동 문제, 왜 개선되지 않는가?
쿠팡의 노동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수년째 국정감사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고,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 감독도 수차례 받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배송 경로와 작업 속도를 초 단위로 통제하고, 노동자를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다루는 방식이 쿠팡의 성공 비결이자 노동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알고리즘의 횡포: 보이지 않는 감독관
쿠팡 노동자들은 “관리자보다 무서운 게 PDA(단말기)“라고 입을 모읍니다. 단말기에 표시되는 시간 내에 배송을 완료하지 못하면 배송 점수가 깎이고, 이는 곧 재계약 불발이나 노선 박탈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감독관’은 노동자들을 쉴 새 없이 몰아세우며 과로를 유발합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아까워 뛰어다녀야 하는 현실은 21세기 최첨단 물류 기업의 이면에 19세기 식 노동 착취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노동계는 “알고리즘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노사 간의 협의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영업 비밀”이라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블랙리스트와 노조 탄압 의혹
지난 2024년 폭로된 ‘블랙리스트’ 의혹은 쿠팡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노동자를 관리·통제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문건에는 노조 활동을 하거나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 심지어 화장실을 자주 간다는 이유로 ‘채용 기피 대상’으로 분류된 수천 명의 명단이 담겨 있었습니다. 쿠팡은 “인사 평가는 기업의 고유 권한”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부당 노동 행위”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2025년 현재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은밀한 블랙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계약을 빌미로 한 ‘길들이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죽음의 외주화: 하청과 특수고용의 덫
쿠팡 물류 배송의 상당 부분은 직고용이 아닌 ‘퀵플렉스’라 불리는 하청 업체 소속 기사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들은 개인사업자(특수고용직) 신분이어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4대 보험 적용이나 퇴직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사고가 나도 쿠팡 본사는 “우리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하청 업체에 떠넘기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 구조 속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가장 위험한 업무를 떠맡고 있습니다. 최근 잇따른 과로사 사고의 대부분이 바로 이 퀵플렉스 기사들에게서 발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본주의 비판 사회극: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번 쿠팡 사태는 전형적인 ‘플랫폼 대기업 vs 영세 사업자·노동자’의 대립 구도를 보여줍니다. 거대 자본과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골리앗’ 쿠팡 앞에서, 개별 노동자와 소상공인은 무력한 ‘다윗’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 21세기형 자본주의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 투쟁 현장입니다.
플랫폼 독점 방지법 제정 목소리 고조
시민 단체들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플랫폼 독점 방지법(온플법)’ 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독점법이나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처럼, 거대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규제하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자는 것입니다.
법안의 핵심은 플랫폼 기업이 자사 상품을 우대하거나, 입점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계와 보수 진영은 “혁신을 저해하고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됩니다.
ESG 경영과 소비자의 윤리적 선택
이번 사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ESG) 경영이 단순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됩니다.
과거에는 “싸고 빠르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편리함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면 거부하겠다”는 윤리적 소비(Value Consumption)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쿠팡 탈퇴 인증 샷이 올라오고, 대체 플랫폼을 이용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기업 이미지가 곧 경쟁력인 시대에, ‘나쁜 기업’이라는 낙인은 쿠팡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노동 투쟁의 새로운 양상
노동계의 투쟁 방식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파업이나 점거 농성뿐만 아니라, SNS를 통한 여론전, 불매 운동, 법적 소송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사측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특히 흩어져 있던 배송 노동자(라이더), 택배 기사, 대리운전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플랫폼 노동자 협의회’를 결성하고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은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이들은 “우리는 ‘사장님’이 아니라 ‘노동자’다”라고 외치며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25년 쿠팡 사태는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거대 플랫폼 자본에 맞서 어떻게 단결하고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혁신의 그림자: 지속 가능한가?
‘쿠팡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쿠팡은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누군가의 고통을 담보로 유지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지속 가능한 모델일까요?
아마존을 닮아가는 쿠팡: 글로벌 스탠다드?
쿠팡은 종종 ‘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립니다. 공격적인 투자와 시장 장악 방식뿐만 아니라, 무노조 경영과 가혹한 노동 통제 방식까지 아마존을 벤치마킹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아마존 역시 미국에서 숱한 노동 문제와 반독점 소송에 휘말려 있습니다. 쿠팡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아마존의 성공 방정식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규제 리스크까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노동자를 갈아 넣어 만든 성장은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물류 혁신의 미래: 로봇과 인간의 공존
쿠팡은 물류 자동화와 로봇 도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 강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 노동자가 배제되거나 기계의 보조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기술 혁신이 인간을 위한 것이 되려면, 로봇과 인간이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고, 자동화의 혜택을 노동자와 공유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치권의 역할: 규제와 진흥 사이
정부와 정치권은 규제와 진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플랫폼 기업의 혁신을 장려하되, 불공정 행위와 노동 착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제재해야 합니다. ‘온플법’ 제정 논의가 단순히 기업 옥죄기가 아니라, 건강한 플랫폼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혁신은 인간을 향해야 한다
쿠팡이 한국 유통 시장에 가져온 혁신과 편익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혁신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가짜 혁신’일 뿐입니다.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납품 업체의 생존권이 짓밟혀서는 안 됩니다.
상생과 공존의 길을 찾아서
이제 쿠팡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지금처럼 ‘승자 독식’의 논리로 질주하다가 사회적 고립을 자초할 것인지, 아니면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받아들여 진정한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인지 말입니다. 소비자와 노동자, 납품 업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쿠팡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의 편리함에 대한 성찰
소비자인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당신의 새벽 배송은 안녕하십니까?”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 하나에 담긴 누군가의 땀과 눈물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윤리적 소비’를 선택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소비자의 깨어있는 의식이 기업을 바꿀 수 있습니다.
2025년의 질문: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쿠팡 사태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효율과 속도만이 미덕인 사회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과 연대가 살아있는 사회인가. 2025년 겨울, 쿠팡 사태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치열한 논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